저녁 설거지를 시작한 지 몇 분 되지 않았는데 장갑 손끝이 헐렁하게 남아 컵이 손에서 미끄러집니다. 큰 냄비를 닦으려고 개수대 깊숙이 손을 넣자 손목으로 물이 주르륵 들어오고, 다 끝내고 벗으면 손바닥이 땀으로 축축합니다. 고무장갑은 부담 없이 사는 물건이라 불편해도 그냥 쓰게 되지만, 불편함이 어디서 오는지 나눠 보면 사이즈, 손목 길이, 안감이라는 세 가지가 각각 다른 문제를 만들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손끝이 헐렁하면 그릇을 쥐는 힘이 새어 나갑니다
장갑 손가락 끝에 공간이 많이 남으면, 컵을 쥘 때 손가락이 아니라 남는 고무가 먼저 그릇에 닿습니다. 그 부분이 접히거나 밀리면서 손에 힘을 줘도 그릇이 빙글 돌아 버리지요. 젖은 유리컵이나 기름기 묻은 접시를 자주 놓친다면 손이 둔해서가 아니라 장갑이 커서일 가능성이 큽니다.
사이즈 표기는 제조사마다 기준이 달라서, 예전에 쓰던 것과 같은 표기를 샀는데도 크거나 작게 느껴지는 일이 흔합니다. 그래서 손바닥 둘레와 가운데 손가락 끝에서 손목까지의 길이를 한 번 재어 두고, 살 때마다 제품의 사이즈 안내와 비교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손끝에 아주 약간의 여유는 있어야 손톱에 눌려 뚫리지 않지만, 끝이 접힐 만큼 남는다면 한 단계 작은 쪽을 보세요. 반대로 주먹을 쥘 때 손바닥이 팽팽하게 당기고 설거지가 끝나면 손가락 마디가 뻐근하다면, 장갑이 손을 계속 조이고 있는 것이니 한 단계 큰 쪽이 맞습니다.
손목으로 들어오는 물은 길이와 팔의 각도에서 생깁니다
설거지를 하다 장갑 안이 젖는 경우는 구멍보다 손목 쪽에서 들어오는 일이 더 많습니다. 손을 개수대 아래로 넣었다가 그릇을 들어 올리면 팔이 위를 향하게 되고, 그때 팔에 묻은 물이 중력을 따라 손목 안쪽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짧은 장갑일수록 이 길이 가깝고, 깊은 냄비나 큰 통을 닦는 날에는 피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큰 그릇을 자주 닦는 집이라면 손목 부분이 팔뚝까지 올라오는 긴 장갑이 편합니다. 지금 장갑을 계속 쓰고 싶다면 손목 끝을 바깥으로 한 번 접어 올려 두세요. 접힌 부분이 작은 턱이 되어 팔을 타고 내려온 물이 장갑 안이 아니라 접힌 곳에 고였다가 떨어집니다. 다만 장갑 안이 젖었는데 손목 쪽은 마른 상태라면, 이때는 손가락 사이나 손끝에 작은 구멍이 났는지를 먼저 보세요. 물을 채운 장갑 입구를 쥐고 살짝 눌러 보면 새는 자리를 찾기 쉽습니다.
안감은 땀과 건조 사이에서 무엇을 택할지의 문제입니다
안쪽에 면 같은 안감이 붙은 장갑은 땀을 받아 주어 오래 껴도 덜 끈적이고, 끼고 벗기도 수월합니다. 대신 한 번 젖으면 안감이 마를 때까지 시간이 걸리고, 덜 마른 채 다시 끼면 냄새가 나기 쉽습니다. 안감이 없는 장갑은 뒤집어 헹구고 말리기 쉬워 위생 관리가 간편하지만, 설거지가 길어지면 손이 땀에 불어 눅눅해집니다.
설거지를 한 번에 몰아서 오래 하는 편이라면 안감 있는 쪽이, 하루에도 몇 번씩 짧게 끼었다 벗는 편이라면 빨리 마르는 안감 없는 쪽이 대체로 맞습니다. 어느 쪽이든 쓰고 나서는 안쪽까지 뒤집어 손가락을 펴서 걸어 두세요. 장갑을 낀 뒤 손이 가렵거나 붉어진다면 고무 소재에 피부가 반응하는 것일 수 있으니, 다른 소재의 장갑으로 바꿔 보고 증상이 계속되면 피부과 진료를 받아 보는 것이 좋습니다.
맞는 장갑을 껴도 불편하다면 쓰는 방식을 의심해 보세요
사이즈와 길이를 맞췄는데도 금방 찢어지거나 손이 아프다면, 장갑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맡기고 있는지 돌아보세요. 칼날이나 깨진 그릇 모서리는 얇은 고무를 쉽게 뚫고, 반지를 낀 채 장갑을 끼면 안쪽에서 고무가 긁혀 약해집니다. 아주 뜨거운 물에 오래 손을 담그면 열이 장갑을 지나 그대로 손에 전해지니, 장갑을 믿고 끓는 물이나 갓 불에서 내린 냄비를 만지지 마세요. 설거지용과 욕실 청소용 장갑을 하나로 같이 쓰고 있다면, 위생을 위해서라도 색을 달리해 따로 두는 것이 좋습니다.
새로 고른다면 지금 설거지에서 가장 거슬리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정해 보세요. 그릇을 자주 놓친다면 손에 맞는 사이즈와 손가락 표면에 미끄럼 방지 무늬가 있는지를, 손목으로 물이 들어온다면 팔뚝까지 오는 길이를, 땀이 불편하다면 안감 여부를 먼저 보면 됩니다. 컵과 수저를 주로 다룬다면 손끝 감각이 살아 있는 얇은 쪽이, 냄비와 프라이팬을 자주 닦는다면 조금 두께가 있는 쪽이 오래 버팁니다.
